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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버섯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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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미셸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는 미국 주류 화단 최초의 흑인 화가였다. 길거리 낙서를 주로 하던 그가 화단의 눈에 띄어 주목받는 신인으로 부상하게 된 것은 19세 때인 1981년이다. 이후 그는 80년대 미국 화단의 새로운 가능성이요, 웬디워홀의 절친한 친구로서 세인과 언론의 관심 속에 살다가 1988년 27세로 세상을 떠났다.

<바스키아>는 그와 동세대 화가인 줄리앙 슈나벨이 그의 삶을 토대로 만든 장편영화 데뷰작이다. 영화는 27세로 요절한 바스키아의 삶 중에서 의미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발췌하여 재조합 하였으며, 그 뮤대는 뉴욕을 벗어나지 않는다.

가을의 한적한 공원 위로 바스키아의 독백이 낙엽처럼 떨어진다. 그는 고호에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독백이 멈추면 조용히 톰 웨이츠의 노래가 나오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데이빗보위, 커트니 러브등의 이름들이 어둠 속에 명멸한다......

<게르니카>, 눈물을 흘리는 여인, 커다랗게 흡뜬 눈으로 그림을 바라보는 어린 소년-바스키아는 눈을 뜬다. 아이티의 중산층으로 혼란기에 조국을 등진 바스키아의 어머니가 <게르니카>에서 무억을 보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바스키아가 세상과 교류하는 방식은 가장 순수한 의미에서 <게르니카>가 말을 대신한 웅변이었듯, 바스키아는 그림을 통해 이야기하고 그림을 통해 이해한다.

그는 레스토랑 테이블에 그리고, 길가의 벽에 그리고, 이야기 도중에 그리며, 애인의 스커트에 그린다.(그녀는 엄청 화를낸다) 바스키아의 첫사랑 지나가 화가지망생인 것은 우연만은 아니다. 그것은 즉, 바스키아의 말을 알아듣는다는 의미인 것이다.

나중에 바스키아가 다른 여자들을 만나면서도 그녀만큼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바스키아가 사귀었던 여자들을 아우르는 지나는 마약을 남용하는 바스키아를 늘 염려하지만, 그가 유명해지면서 소외를 느낀다.

이들의 관계는 공간 속에 스쳐지나면서 겹치는 장면을 통해 이야기가 만들어진다.감독인 슈나벨 자신의 생각을 그들의 목소리 속에 집어넣어 때론 바스키아에게 말하고, 때론 관객에게 전달한다.

공원의 상자안에서 노숙하기도 하고, 친구들의 집에 전전하기도 하며 바스키아는 스타덤을 꿈꾸었다. 그런 그에게 친구 베니는 '유명해진다는 것은 말쑥하게 차려입고 유명인사들과 근사하게 식사를 하며, 같은 일을 같은 스타일로 반복하며 지루해 하지 않는 것' 이라고 말하고는 '바스키아는 그런 일만 하기엔 너무 똑똑해서 곧 지루해 죽을 것'이라고 한다.

슈나벨은 영화가 단지 연대기적 나열과 사실의 고증에 빠지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 압축적으로 여러가지를 표현한다.

비평가 르네 리카드는 바스키아가 공원에서 노숙하는 상자 앞에서 '예술 시장을 외면한 반 고흐의 창작이 오늘날에는 바보같은 신화일 뿐'이라고 말한다. 한 파티에서 마약상에게 선물로 준 바스키아의 작품을 발견하여 그를 전시공간으로 이끈 장본인이기도 한 르네는, '내가 말하면 사람들은 믿지 않지만, 그것이 글로 쓰이면 진실로 통한다'라며 '사람들을 더 이상 예술을 수집하지 않고, 대신 사람을 사버린다.'라고 철저히 시장화된 미술제도의 실상을 밝힌다.(실제로 르네는 바스키아에 대한 장문 비평을 쓴 최초의 비평가였다)

알버트 밀로의 전시회가 열리는 그 화랑 앞에서 워홀의 리무진을 발견한 바스키아는 워홀을 비롯한 제도권 인사들이 들끓는 모습을 화랑의 유리 문 썬팅 사이로 넘겨본다.

모든 것을 드러낼 것 간은 유리문은 썬팅으로 내부를 가리고, 바스키아는 그 틈새 사이로 전시장 안을 본다. 그들은 그들의 세계 속에 살고 있는 것이며, 바스키아는 그 곳에서뒤돌아자신의 공간인 거리로 간다.

펼쳐진 벽이 캔버스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낙서를 해대고, 서명을 한다. 슈나벨은 이 작업을 고정 된 카메라로 응시하며, 춤울 추듯 작업하는 모습이 디졸브를 통해 전개된다. 이후 바스키아가 작업실을 마련하여 작업을 하는 과정도 같은 방식으로 촬영함으로써 낙서와 작품이 동일하다고 보여준다.

메리분 화랑에서 넘겨 보기만 했던 사람들은 머지 않아 그를 스타로 떠받든다. 메리분, 브루노 비쇼버거,헨리 겔드잘러, 애니나 노제이는 실제로 바스키아의 작품을 거래하고 전시회를 주선했던 화상(畵商)들이었다. 그들이 실제 바스키아와 맺은 관계는 더욱 복잡하지만, 슈나벨은 바스키아가 획득한 공간인 작업실과 갤러리를 중심으로 미술제도권과 바스키아의 관계를 압축적으로 풀어간다.

그러나 정작 소외는 성공과 함께 시작 된다.자신의 공간에서 벗어나 '그들'의 공간, 스타덤으로 들어갔으나, 그곳은 그다지 편하지 않았다.

감식안은 있지만 안주한 화가 밀로, 앤디워홀, 약삭빠른 에이전트 브루노 비쇼베르거 등 바스키아를 발견한 당대 화단의 거물들이 그의 주위를 둘러싸지만, 주류화단의 상류 백인 문화는 바스키아로 하여금 처음으로 흑인이자 아이티 이민이라는 이방인의 아이덴티티를 형성시칸다. 이방성은 액세서리가 되고 타고난 어법은 예술적 창의가 되어 그의 명성은 나날이 높아진다, 완전한 이해도 완전한 몰이해도 아닌(혹은 완전한 수용도 아닌 완전한 거부도 아닌)미묘한 경계에서 바스키아는 점점 그림의 의미를 잃어간다. 그리고 그를 가장 잘 이해했던 앤디 워홀의 죽음과 함께 세상과 바스키아의 끈은 마침내 끊어져버린다.

바스키아가 성공을 원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는 성공을 바랬고, 그래서 자기 그림을 워홀에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성공(특히 이방인 또는 비주류의)이 초래하는 외부로부터의 자기 인식이 필경은 자기 소외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그는 몰랐다. 주류사회에 대해 비주류적인 거리의 삶은 그때까지 바스키아 개인의 이방성을 부각시킨 적이 없었다.

거리의 예술가 시절에 단지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로 택시를 잡거나, 식당에서 무언가를 먹으려고 하더라도 경계의 대상이었던 그에게, 예술가의 명성도 그의 신분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여전히 흑인으로 보일 따름이었다. 지나와 함께 들어간 레스토랑에서 상류층 백인들은 수군대었고, 철갑상어 알을 계산할 때도 식품점 점원은 그가 내민 지폐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이러한 삐딱한 시선은 바스키아를 인터뷰할 때도 중류계급 출신의 흑인이 갖는 정체성이나, 정신병원에 있는 어머니에 대한 질문으로 수렴되면서, 바스키아의 창작열을 상처에서 찾아내려고 한다. 이것을 잠시나마 막아준 것은 돈이었다. 쑥덕대는 백인들의 몫까지 계산하고, 상어알을 모조리 사버린다.

워홀은 그에게 돈도 주었지만, 바스키아의 하소연으도 들어준 친구였다. '내가 가난했을 때, 사람들은 내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았고, 일단 돈을 벌자 그것을 오래 유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지금은 마약때문에 스스로를 파멸시키고 있다고 말하며, 그것을 끊고 나면 그의 예술세계는 끝났다라고 쑥덕댈 것'이라고 자신의 심경을 토로한다.

워홀은 바스키아와 함께 작업하고 싶다는 얘기를 자신의 '공장'에서가 아닌 길거리에서 건넨다. 그들의 걸음을 따라 카메라가 보여주는 거리는 사방이 낙서로 가득한 바스키아의 공간이었다. 워홀은 기꺼이 바스키아의 공간에 들어와 그에게 제안한 것이다. 바스키아는 워홀에게 자신의 머리털로 만든 가발을 선물한다.

그러나 공동 전시회가 실패하자, 사람들은 바스키아를 워홀의 애완견(lap dog)이라고 부르며 등을 돌리고, 워홀을 비난했다. 실의에 찬 바스키아가 자신의 거리로 돌아왔지만, 젊은이들은 낙서'NOTHING TO BE GAINED'에 'SAMO'(same old man shit)의 약자로 한 때 바스키아를 대표한 이름)라는 서명을 지우고 있었다. 자신이'SAMO'라고 밝히며 저지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바스키아를 흠씬 두들겼으며, 뻗어버린 바스키아 위로 워홀과 함께 찍은 전시회 포스터가 붙어있다. 더 이상 벽은 바스키아의 캔버스가 아니었으며, 단지 자신의 상품성을 홍보하는 게시판으로 바뀌었다.

결코 흑인의 정체성을 대변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제도권에 편안히 포섭되지도 못한 바스키아에게, 알버트 밀로는 '예술이 대중화되었다고 씌어진 것만이 대중화된 예술일 뿐, 관객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으며, 단지 신문기사에 예술이 대중화 되었다고 씌어진 것만이 대중회된 예술일 뿐, 관객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으며, 지구상에서 그림에 대해 아는 사람은 열명도 채 왼되며 그중 하나가 워홀'이라고 워홀의 신뢰를 되살려준다. 그러나, 워홀의 애정을 재확인한 기쁨도 잠시였고. 워홀은 죽었다.

어머니는 곧 바다였고 워홀은 황폐하게 느꼈던 뉴욕의 하늘에, 바스키아는 서핑을 타는 꿈을 투영하며 하와이를 동경했지만, 이내 큰 파도가 일어 그를 삼켰다.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피카소의 <게로니카>를 보는 장면은 푸른 빛에 가득하다. 푸른 색조는 바스키아가 뉴욕의 하늘에서 서핑을 타는 모습에 나오고, 워홀을 찍은 필름에서도 같은 색조를 보인다. 바스키아의 곁을 떠나야 하는 슬픔에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고, 워홀의 필름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 옆에 선 바스키아의 머리에서 노란 색의 왕관이 생겨난다. 노란 색은 워홀과 같이 길을 걸으며 공동 작업을 제안 받았을때 발견한 오리 인형의 색이었으며, 워홀은 어린 시절 형과 함께 오리형제를 길렀었노라고 바스키아에게 들려준다.

알버트 밀로를 통해 워홀의 애정을 확인한 바스키아는 즉시 그 오리 인형을 샀지만, 워홀의 죽음을 전해 듣고는 그것을 길바닥에 놓아두었다. 노란 색은 바스키아에게 스타덤을 상징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워홀과의 형제애를 통해서 얻을 수 있었고, 이제 워홀을 떠나보낸 입장에서 왕관은 더 이상 의미있지 않앗다. (그의 죽음에 셔터내린 작업실 입구에는 'OUT GETTING RIBS'라고 씌여있어 그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워홀을 떠나보내고, 그는 다시 어머니를 찾지만 병원 문은 닫혀있다. 메리 분 화랑에서 유리창 틈새 너머로 워홀을 바라보았던 것처럼, 바스키아는 이제 철창너머로 어머니를 부른다

거리를 헤매다 쓰러진 바스키아를 발견한 배니는 낡은 지프차에 그를 태운다. 바스키아는 그 위에 올라타 마치 서핑을 하는 것처럼 하늘을 향해 날개짓 한다. 그가 꿈꾸웠던 하와이는 결코 먼 곳에 있지 않았다.

당시 워홀을 우상으로 숭배하는 워홀리즘(Warholism)은 두 부류의 젊은 예술가들에서 일었는데, 하나는 바스키아가 속한 낙서화가들이었고, 다른 하나는 감독인 줄리앙 슈나벨이 속한 신표현주의 화가들이었다.그 스스로 '당시 유일하게 바스키아를 이용해먹지 않은 주변인' 이라고 자처하는 줄리앙 슈나벨은 이미 79년에 뉴욕에서 단독 전시회를 갖고 신표현주의의기수로서 확고부동한 명성을 쥐고 잇는 아티스트이다.

줄리앙 슈나벨은 80년대 뉴욕 화단의 상업주의와 호사가들의 득세 속에서 아티스트들이 처한 상황을 바스키아에게 초점을 두고 재현하고자 했다.

슈나벨은 단지 바스키아의 삶과 그림에 관한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니었다.그는 이전부터 캔버스를 벗어나 접시나 모피 등에 그림을 그려댔다. 이제는 필름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미니멀리즘으로 극에 달한 모더니즘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표현성을 회복하기 위해 과거의 것들을 차용하였던 것처럼 영화도 그 일환이었다.

바스키아가 워홀의 죽음을 접하고 둘이 남긴 필름을 보면서 지난 과거를 그려내듯이, 슈나벨은 바스키아를 둘러싼 기억을 재료로 삼아 새롭게 구성해낸다. 억압된 감정과 느낌을 격렬히 표출하는 슈나벨의 붓끝은 바스키아의삶과맥을 같이 한다. 바스키아가 길을 걷는 시퀀스도 편집에 의해 재단되어 울퉁불틍한 질감을 만들어 낸다. 대중매체를 혼용했듯이 뮤직 비디오와TV화면을 끌어들인다.

바스키아가 베니에게 들려주는 전설 속에서, 아무 말도 알 수 없는 어린왕자(자신의 이야기를 인터뷰에서도 하지 못하고, 워홀에 대한 애정과 그들의 관계에 대한 비난에 항변도 할 수 없던 바스키아)는 창틀에 왕관을 부딪혀 소리를 냈다. 음악을 버리지 못했던 바스키아처럼, 슈나벨은 그의 팔레트에 음악을 풀어 영화 속에 섞었다. <출처:키노>

출처 http://blog.naver.com/airbagep/8000712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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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 그림에도 별로 영화에도 별로... 말 그대로 문화적으론 원시인이라고 전부터 알고있었지만 아~~~

항상 나의 무식함이 드러날때마다 너무너무 슬프다 ㅡㅜ

각나그네의 싱글인 Jean&Andy를 듣다가 도대체 가사에 앤디는 앤디워홀인데 쟝은 왜 없는게야!!라는 의문에 네이버를 돌아다닌결과 이런걸 알아냈어

노래가사의 세이모<samo>가 쟝이었더군 OTL

무식한건 슬픈거야

오늘 개강하고는 첨으로 새로연 도서관 가 봤는데 아직도 상태가 영...

학생증 찍고 들어가는것도 안되다가 되다가하고 대출/반납은 아직 못한다질않나 에고에고...

도대체 방학동안은 뭐하고 여태 이모양인게야!

암튼.. 이게 아닌데.. 오늘은 그림책<그림을 소개한책>을 봤는데 은근히 재밌더라<사실 왜 그게 명화인지는 아무리 설명해줘도 가슴에 와 닿지 않았지만>

samo도 알아보고 혹시 DVD도 한번 볼까보다

우리학교도서관은 책보다 DVD가 더 잘되있는 이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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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각나그네의 Jean&Andy앨범!!!
Posted by 가야버섯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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